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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중국 최대 인기 CEO였던 마윈(马云), 그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따후입니다.

 

오늘은 마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알리바바와 타오바오의 창립자인 마윈! 

 

자신과 닮은 아이에게 장학금 지원을 해줘서 특이한(?) 선행(?)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죠.

 

마윈 닮은 아이와 마윈

한때 중국의 젋은이들의 롤모델 1위였던 마윈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윈은 1964년 9월 10일에 항저우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어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외국인들에게 무조건 말을 걸자는 마인드로 대화를 시도해 영어능력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 마인드가 현실화 가능했던 이유 중 한가지는 당시 그가 살았던 항저우의 시후라는 곳에 외국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 진학을 실패할 줄 알았으나 결원이 생긴 항저우 사범대학에 운좋게 입학했다고 합니다.

 

영어 능력이 좋았던 덕분에 성적도 우수하고 학생회장 및 항저우 학생연맹 장도 맡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애도 잘했나 봅니다.. 대학시절 만난 장잉과 결혼했습니다.

 

마윈과 아내 장잉

1988년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 영어 강사로 들어갔는데.. 상당히 박봉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항저우 사대 학장이

 

'네가 교수를 한다고 약속해놓고 그만두면 네 후배들 앞날까지 막힌다... 월급이 적어도 5년만 버텨달라.'고 사정사정해서.

 

 6년 반을 버티고 다른 대학으로 옮겼는데..  밤에는 다른 야간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그때 무역 업계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다고 합니다.

 

마윈 영어 강사 시절

알리바바 창립 멤버 18명 중에서, 몇몇은 마윈에게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라고 합니다... 역시 인연은 중요합니다..

1992년 강사 생활을 하면서 하이보(海博)라는 이름의 통역 회사를 통해 첫 번째 기업 경영을 시작.

1995년 미국에 방문했다가 친구를 통해 인터넷을 처음 알게 되었고 

 

곧바로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인 차이나옐로우페이지(中國黃頁)를 세웠습니다.

 

차이나옐로우페이지는 1995년에 2만 7천 위안의 자본금으로 세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회사였지만,

 

외국 기업들이 자금력을 내세워 경쟁이 되지 않았고, 고향인 항저우에 내려갔더니 경쟁 상대였던

 

'항저우전신'이 자금력으로 압박, 1996년 3월 항저우전신과 합병하기로 하였으나, 경영 의견에 대한 차이가 있었고,

 

자본과 권력에서 밀리는 마윈이 사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인터넷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했으나

 

공공기관 특성상 경영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중소기업을 위한 전자상거래 B2B 모델에 대한 마윈의 구상은 이 시기에 나온 것이다. )

 

1999년 회사를 관두고 알리바바 창업멤버들과 함께 항저우로 떠났는데

1999년 1월 B2B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를 설립했고

 

 50만 위안 자본으로 45평짜리 마윈 자택에 모여 18명의 창업 멤버가 하루 17시간씩 일한 끝에,

 

1999년 3월에 홈페이지가 완성.. 같은해 8월경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냅니다. 

2000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마윈을 직접 만난지 단 6분 만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하는데...대단하네요..

 

투자를 위해 기업가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자리였는데,

 

마윈에게 설명할 20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손정의가 듣다가 6분만에 말을 끊어버리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 그 큰돈을.. 손정의 그는 도대체... 대단하네요..;; )

 

손정의는 3천만 달러를 제안했지만, 마윈은 이를 거절하고 2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았고

 

이 2천만 달러는 후에 알리바바가 상장되면서 578억 달러가 되어 3000배의 대박을 치게 됩니다. 

 

손정의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2003년 C2C 거래 기업 타오바오를 설립.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도 출시.

2005년 야후 차이나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금을 받아내고.

2006년 경쟁자 eBay를 수수료 무료라는 획기적인 무기로 중국 시장에서 퇴출.

2007년 홍콩 주식 시장에 상장.

2013년 홍콩의 명문대인 홍콩과기대에서 명예박사학위.

2014년 뉴욕 주식 시장에 상장.

 

추가적으로 마윈의 최대 업적중의 하나는 중국 운송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입니다.

 

중국 큰 땅덩어리에서 배송이 그렇게 빨리 되도록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합니다.

 2019년 9월에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고 현 최고경영자(CEO)인 장융(張勇)이 회장직을 이어받는다고 밝혔는데

 

( 여기에 대해서는 말이 엄청나게 많다.. )

 

마윈의 후계자 장융(張勇)

이 같은 결정에 세간에서 '중국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은퇴는 내가 10여년 전부터 준비하고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나에게 미쳤냐면서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사퇴하는 거냐고 끊임없이 물어봤고

 

나는 모두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정부 개입설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하필 이 기간이 중국내의 인기 스타들과 경제인들 일부가 갑자기 재산을 모두 기부(?)하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많이 발생했던 시기입니다.

 

판빙빙 실종 + 마윈 은퇴

마윈이 최근 들어서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하는데... 태극권 옹호부터 시작해서 966 열정페이 옹호 사건이 있습니다.

 

특히나 수많은 젋은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966 발언을 살펴보면 

 

2019년 4월, 996 근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마윈은 자신의 SNS에 996 근무를 옹호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는데

 

영락없는 열정페이식 발언이라 논란이 되었고 심지어 중국 관영매체들까지도 나서서 이 주장을 비판하였습니다...

 

루머인지 사실인지 마윈이 알리바바에 관한 권한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마윈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