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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홍콩시위와 중국의 시위

안녕하세요~ 따후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최근에 홍콩의 시위가 가장 핫한 세계 이슈죠.

 

그래서 한번 중국의 시위 역사(?)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1. 1차 천안문 사태 (4.5 운동)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천안문 사태는 2차 천안문 사태이고 1차의 경우에는 그 내용과 시기가 다릅니다.

 

1차 천안문 사태 

 

내용을 보게 되면 1970년대 중국에는 마오쩌둥의 사상 절대화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강했는데 

 

그 와중에 민중의 높은 지지를 받는 주은래 총리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서 1976년 4월 4일 손에 화환을 들고서 천안문 광장에 모이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군중이 기념비에 놓은 모든 화환을 강제 철거하였고


이에 격분한 군중은 4월 5일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4.5운동)

 

마오쩌둥과 그의 총애를 받던 4인방에 의해 모두 무력 진압되었고 모든 죄는 등소평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등소평은 정계에 진출, 사인방은 처벌을 받게 됩니다.

 

 

2. 2차 천안문 사태 (5월 35일)


천안문 사태는 중국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 중의 하나로 기억되어 있지만


사실상 중국인들이 외국인과 대화 소재로는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 창피한 과거랄까..? )

 

2차 천안문 사태 


중국 정부의 개방 이후의 급속도의 성장과 동시에 관료들의 부패가 엄청 났는데


당시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 학생이 

 

' 현재의 개혁은 잘못된 방향이다. 시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을 위한 개혁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인민들 사이에서 부패에 관한 분노가 극에 달했었습니다.


천안문으로 1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시위 참여자의 다수가 유서를 작성하고 시위에 참여할 정도였다고 였으니..

1989년 5월 19일

 

중국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1989년 6월 4일 

 

탱크와 함께 무장한 군인들은 해당 구역의 인구를 무차별 폭격 

 

무력 진압 7시만에 학살은 종료되고 수천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해당 사망자의 가족 부모를 감시하였으며 접촉하는 사람까지 조사했다고 합니다.


몇년 전만해도 바이두에 6월 4일은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5월35일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은어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현재는 6월 4일이라는 단어는 검색이 가능하나 천안문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3. 티베트 시위

 

1950년대에 중국이 무력으로 티베트를 먹었습니다.(?) 

 

언어, 종교, 인종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같은 중국이라고 하니 ... 당연히 반발하겠죠..? 


그렇기에 너무나 자주 있는 시위.. 그 중에서도 2008년 시위가 대표적입니다. 

 

티베트 시위

매 시위 매번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입니다...그냥 탱크로 밀어버리는... 무섭다...;;

2008년 시위에서도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했으며  

여튼 중국 정부와 티베트의 타협은 없습니다.

 

(홍콩시위와 함께 미국의 개입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맞다고 볼수 있으나

실질적 국민들의 자발적인 시위로 보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이쪽 티베트 지역에는 중국 사복경찰이 길가에 배치되어 있는데 

말 좀만 잘못하면 잡혀간다네요... ㅎㄷㄷ...

 

 

4. 반일 시위

2005년과 2012년 두가지가 대표적인데 

2012년 시위는 센카쿠열도에 관한 시위.

2005년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한 시위입니다. 

 

반일 시위


반일 시위는 우리나라도 조금은 있었지만.. 중국만큼은 아닌거 같습니다. 일본을 정말 싫어합니다..


심지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죠.. (최근 국가적으로는 관계가 좋아지는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저 두가지 시위 모두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몇천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시위 규모에 비하면 세발에 피긴한데요 ㅋㅋ... 크게 다룰 만한 의미있는 사건은 아니었습니다만 

중국 국민들이 일본을 많이 안좋아한다... 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5. 사드 시위

 

2017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사대 배치에 관한 시위입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자 중국이 노발대발 난리를 친 사건입니다.

 

중국의 사드 반한 시위

지금 생각해도 왜 우리한테 머라했는지.. 미국한테 말하든가.. 좀 어이없지만..

 

여튼 우리 국민들에게는 반중감정을 극에 달하게 만든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중국의 시위와 인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보도하였는데 흠.. 이건 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시 중국에 있었던 입장으로 말씀드리면..

일반 중국인들은 관심없었습니다... (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

 

사업 하시는 분들은 조금 문제가 있으셨을지도 모르지만...

 

머.. 저는 잘 못느꼈지만 우선 확실한건 중국 공산당이 정말로 말도 안되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6. 홍콩 우산시위 (우산혁명)

 

홍콩 우산혁명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2014년 9월 하순부터 12월 15일까지 약 79일간 이어진 민주화 시위입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한 데 

 

대한 반발이 시위로 이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시위대의 저항이 거샜습니다.


10만명이상의 시위대가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아낸것을 보고서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이 홍콩의 우산시위 결론이 정말 중요한 것이.. 

 

결국 시위에도 불구, 현재 홍콩의 행정장관은 친중성향의 캐리람(林鄭月娥)이 집권중이라는것...

결국 이게 오늘의 홍콩시위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흠.. 홍콩 시민들 마음이 아프네요.. 

 

 

7. 홍콩 시위

2019년 6월 9일에 시작된 홍콩 시위는 집회측 추산 100만명 규모의 시위입니다..

 

홍콩 시위

유튜브로 실시간 영상 봤는데요.. 사람 정말 많습니다... 

 

시위의 내용은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사퇴와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반대입니다. 

간접적으로는 중국 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홍콩 부동산 급등과 급격한 물가 상승 

 

그리고 불황으로 인한 국직난이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은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퇴요구에는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산혁명 당시와 차이가 없는...)

고위직 관료들이 친중 인물들로 교체 될수록 시위는 점차 빈번해 질 것이지만... 

 

중국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시위도 처음 시작은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고 무력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진압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일이 이렇게 커질줄 몰랐겠죠.. 

 

참고로 바이두에서 홍콩시위 검색하시면 현재 진행중인 시위 내용은 안나오고 

 

커뮤니티 같은 곳에 자세하게 들어가시면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중국의 시위와 이번 홍콩 시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진핑에게 아마 가장 무서운 것은 군중들의 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점점 커지는 시위 규모에 제2의 문화대혁명이 나오는 거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먹물로 쓴 거짓말은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 없다. -루쉰